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리토모 학교 비리 사건 (문단 편집) == 분노한 일본, [[아베 신조|총리]] 퇴진을 외치다 == [youtube(dc5IrHmbDL8)] [youtube(8-sIPGi3Sdw)] >'''"[[아베 신조|아베]]는 [[하야|사퇴하라!]] (安倍は辞めろ!)"''' >---- >'''시위대의 주된 구호''' >'''光は闇に負けない (빛은 어둠에 지지 않는다.)''' >'''真は嘘に負けない (참은 거짓에 지지 않는다.)''' >'''真実は沈まない (진실은 가라앉지 않는다.)''' >'''決して、あきらめはしな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 [[https://youtu.be/sTbVQEENI-k|일본어 번안 버전]] [[https://youtu.be/nB1q7BxybpU|#]]''' [[아베 신조]]는 논란이 많았던 인물이라 이 사건 이전부터 퇴진 시위가 많이 일어난 편이기는 하지만[* 2015년에는 전쟁법 반대로 10만이 넘어가는 거대 퇴진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콘크리트 지지층 입장에서는 [[XX하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논란이 있어도 경제를 잘 살려 놓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크게 트집잡지 않았으며 당시에는 스캔들이 일어났던 건 아니었기 때문에 유야무야 묻힐 수 있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2016년~2017년에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의 영향을 받아 시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규모가 커졌고 내각 총사퇴에서 시작해 "아베 부부를 [[감옥]]에 가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이미 사퇴해야 하는 수준까지 떨어졌는데 이 시점에서 직접 시위에는 나가지 않아도 지지를 철회한 자들이 엄청나게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시위대원들은 "[[대한민국]]처럼 수백만 명이 모일 수 있다면 그만한 힘은 없을 것이며, 이전처럼 불의에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나가 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외쳤다. 역대급 장기집회에 일본 정치인들도 주목했고 시대가 변하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3월 12일 주최 측 추산 약 5천여 명[[https://twitter.com/public4f/status/974135881626865664|#]]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아베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195754&code=61131211|#]] 이 와중에 당사자인 [[아베 아키에]]의 페이스북 계정이 "야당은 바보 같은 질문만 하네."라는 글에 좋아요를 [[트인낭|누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었다.[* 이에 한 공산당 소속 국회의원이 "야당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지 아키에 부인이 경험하기 위해서 국회에 와 보시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https://headlines.yahoo.co.jp/hl?a=20180313-00000045-asahi-soci|#]] 야당 연합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키에를 반드시 [[청문회]]에 세워서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고 못박았다. 3월 14일에 총리관저 앞에서 다시 주최 측 추산 1만 명이 넘는 시위가 열렸다. [[https://twitter.com/abenocommittee/status/973907173389484033|#]] 트위터에서는 [[https://twitter.com/search?q=%23regaindemocracyjp|#RegaindemocracyJP]] 해시태그가 퍼졌. 한국인들은 이 해시태그로 아베 퇴진 시위를 하는 일본인들을 응원하는 말을 보냈고 일본인들도 한국인들에게 고맙다고 답변하는 [[위아더 월드|오랜만에 한일 국민들의 훈훈한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촛불시위]]도 같이 언급되면서 한국을 본받자는 말도 나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iLL6TnORR0I|#]] 3월 17일에는 [[교토]]에서 약 200여 명 정도가 모인 아베 퇴진 시위가 열렸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14932&CMPT_CD=P0010|#]] 3월 18일에는 일본 각지에서 퇴진 시위가 벌어졌다. [[도쿄]]에서는 [[신주쿠역]] 서쪽 출구에서 집회가 있었으며 [[오사카]]에서는 시민 600여 명이 아베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거리행진을 벌였고 [[가나자와시]]의 [[가나자와역]]에서도 집회가 열렸다. 보통 정치적 이슈 등에 대해서 도쿄 정도에서나 집회가 열리던 전례를 미루어 보면 이 사건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분노가 컸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3/18/0200000000AKR20180318056500073.HTML|#]][* 일본 국민들의 분노도 대부분 납득할 수 있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왜냐하면 일본 국민들도 불과 얼마 전 [[이웃나라]]인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한반도 사상 가장 황당한 정치적 스캔들]]을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일본은 깨끗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아베 신조가 일본 국민들의 뒤통수를 후려쳤으니 일본 국민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을 여행한 어느 한국 네티즌에 따르면 극소수 인원이긴 해도 큐슈의 대표적 자민당 텃밭인 [[가고시마]][* 구 [[에도 시대]]의 [[사쓰마 번]]. 앙숙이었던 [[조슈 번]]과 함께 막부 토벌과 [[메이지 유신]]에 큰 공을 세워 일제 정계에서 이 지역 출신들의 영향은 꽤 강했다. 그 유명한 [[사이고 다카모리]]의 고향이기도 하다.]에서도 아베 퇴진 시위가 있었다고 한다. [[http://mlbpark.donga.com/mp/b.php?p=1&b=bullpen&id=201803220014901344|#]] 3월 21일, [[도쿄]] [[신주쿠]]에서 비가 오던 중에도 주최 추산 2천여 명이 모인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는 [[입헌민주당(2017년)|입헌민주당]] 대표 [[에다노 유키오]]가 나와서 [[https://m.news.naver.com/read.nhn?oid=421&aid=0003271647|아베를 성토하고 아키에의 국회출석을 요구하는 연설을 했다]]. 아베 부부도 감옥으로 보내야 된다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3월 23일에는 도쿄 [[치요다구]] 총리관저 앞에서 시민 5천여 명이 오후 8시가 되자 현수막과 피켓을 내리고 LED 촛불과 플래시 점등을 들어올리는 등 촛불시위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한국의 촛불시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시민들은 "스고이.", "키레이."라며 감탄했다고 하며 [[오사카]], [[삿포로]] 등에서도 시위가 열리는 등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전해졌다. 매주 금요일마다 촛불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했고 아베가 사퇴할 때까지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http://news.donga.com/3/all/20180323/89253019/1|#]] 참고로 댓글 보면 암이 걸린다. [[박사모]]와 [[혐일]]도 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데까지 와서 [[관종]]짓하는 박사모와 혐일들.-- 그래도 혐일성 반응은 극소수였고 한국 시민들의 여론은 대부분 일본 시민들의 시위를 응원하는 쪽에 가까웠다. 다만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반응도 있는 편이었다. 일본에는 총리 [[탄핵]]제도가 없기 때문에 총리가 그 정도로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면 의회가 [[내각불신임결의|내각을 신임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하여 내각 총사퇴를 단행할 수 있지만 총리가 [[동귀어진|민심을 확인하자며]] [[의회해산|의회를 해산시키면]] 총선을 다시 치뤄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7년에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미 본 사건이 알려진 상태에서 치뤄진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했고 [[여대야소|중의원의 과반이 자민당 소속이었기 때문]]에 자민당 내에서도 반(反) 아베 세력이 힘을 얻지 않는 이상 내각불신임 발동도 어려웠다. 시위 진행 중 특기할 사항이라면 위 영상에도 나왔지만 [[일본 경찰]]은 한국처럼 차선을 내주는 식이 아니라 보행로 확보를 핑계삼아 사람들을 일렬로 길게 늘어뜨리는 방식으로 배치했다. 그나마 영상에서 나오는 구간은 좀 넓게 배치된 축에 속하고 일본 국회의사당 앞의 경우엔 거의 1줄에 2~3명이 들어갈 정도로 바짝 좁혀 놓은 상태로 진행했다. 시위대가 민폐에 민감한 일본인 비 참가자들에게 비난받도록 유도할 수 있으면서도 통제가 쉽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일본에서는 "그때는 몰랐지만 한국을 이제 이해할 것 같다."는 말까지 나왔는데 그만큼 분노가 컸다는 뜻이다. 3월 25일에는 [[신주쿠]]에서 큰 규모로 시위가 열렸다. 상당한 인파가 시위에 참가했으나 시위 인원 집계는 하지 않았던 듯하다. [[https://mainichi.jp/movie/video/?id=5757839500001|#]] 3월 26일에도 [[도쿄]]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이 와중에도 개헌을 강행하려는 아베를 보고 호헌파들이 전국 여기저기에서 소규모 시위를 벌이면서 "국민의 신뢰부터 회복하라"고 디스했다. 3월 27일에 청문회에 나온 관료들이 아베 부부에 대해 전면 부인하자 인근 시민들은 "거짓말 그만하고 진실이나 밝히라"고 항변했다. 3월 30일에 다시 도쿄에서 총리관저와 국회 인근에서 집회 측 추산 1만 2천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3/30/0200000000AKR20180330201000073.HTML|#]] 4월 5일 반전, 호헌단체 주도로 국회 앞에서 시위가 열렸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4/05/0200000000AKR20180405174300073.HTML|#]] 4월 6일에 다시 총리관저와 국회 인근에서 수천 명이 참여한 시위가 열렸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22100&CMPT_CD=P0010|#]] 그 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카케학원 비리와 자위대 문서 비리가 제대로 터져 아베의 지지율은 엄청나게 가라앉았고 시위 규모는 커졌다. 2017년에는 단순한 논란이라 묻힐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빼도 박도 못하는 물증이 나왔기 때문이다. 4월 14일,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주최 측 추산 3만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모리토모 사건이 문서조작이 밝혀지면서 재점화된 이래 가장 많은 규모의 시위대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4/14/0200000000AKR20180414055500073.HTML|기사]], [[https://www.youtube.com/watch?v=dX6KhIzBaUk|영상]] 이럼에도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 참의원인 오노다 기미(小野田紀美)[* [[시카고]] 태생의 일본 정치인으로,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2011년 자민당 소속으로 도쿄도 북구의회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2016년에 참의원 선거에 나서서 당선되면서 오카야마현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이 싹쓸이하게 되었다.]는 4월 14일에 있었던 토요일 시위에 대해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기면서 시위대를 조롱하기도 했다. >本当に素朴な疑問なのですが… >土日は議員みんな地元とかに帰っていて国会議事堂には誰もいないわけで。すごいシュールというかなんというか…何がしたいんだろう。 >진짜 사소한 궁금증인데… >주말엔 지역구로 내려가는 등의 이유로 국회의사당엔 아무도 없어요. 뭔가 [[슈르]](シュール)[* 초현실적인, 엽기적인 이런 느낌의 [[속어]]. 의역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딴 세상 사람들인가…” 같은 뉘앙스.]하다고 해야할지… 뭘 하고 싶은 걸까. > >金帰火来(きんきからい)とよく言われますが、参議院は月曜に日程入ることも多いので私は金曜日の夜地元に帰って日曜日の夜東京に行くことが多いです。平日は東京で仕事、土日は地元で仕事(集会で現場の声を聞いたり行事に出席したり挨拶まわりしたり)、という感じですね。人によるかもしれませんが。 >킨키카라이[* 일본 참의원이 [[금요일]] 밤에 지역 선거구에 가서 주말에 정치 활동을 하고 [[화요일]]에 도쿄 의사당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박지원(1942)]]의 국회의원 시절 금귀월래와 의사당으로 돌아오는 날짜를 제외하면 한자까지 같다. 즉, 금귀화래가 된다.]라는 말을 다들 들어보셨겠지만, 참의원은 월요일에도 일정이 많기 때문에 저 같은 경우에는 금요일 밤에 현지로 내려가 일요일 밤에 도쿄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일에는 도쿄에서 일하고, 주말은 현지에서 일(집회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든지, 행사에 참석한다든지, 인사를 드린다든지)이라는 느낌으로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 >[[https://twitter.com/onoda_kimi/status/985156491198906368|##]] 당연하지만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민의 분노를 표출하는 상징적인 방식인데 이걸 "국회의원 없는데 뭐하는 짓? ㅋㅋㅋ"이라며 조롱하는 건 국민에 의해 뽑힌 국회의원이 해선 안 될 발언이다. 아마 오노다 의원은 아무도 없는 국회 앞에서 혼자 시위하는 일본 좌익들이 웃겼던 모양이다. 후쿠다 준이치 재무성 차관이 성추행 파문을 일으켰고 이를 강력히 부인한 데다 [[아소 다로]]가 그를 감싸면서 인권 운운하는 망언을 터트렸고 현직 [[자위대]] 고위 장교가 민진당 참의원에게 국가의 적 운운하는 망언까지 한 사실이 알려져 시위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국 그 차관은 불명예 사임을 하면서도 뻔뻔하게 부정했지만 그 기자가 [[테레비 아사히]] 출신이라 사실증거를 들이대 국민들에게 더 갈굼받았다. 당시 일본 국민들 중 6월 총재 선거 때 사임하기를 바라는 자들과 당장 사임하기를 바라던 자를 합치면 무려 60%에 육박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던 비리와 퇴진 운동, 자민당 의원들의 병크가 내각 지지율을 땅끝까지 떨어뜨린 셈. 자민당의 다른 계파들은 아베에게 날선 태도를 보이면서 자신들이 아베를 제치고 정권을 잡을 생각을 했다. 퇴진 시위대 쪽에서 한국의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추모와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 당시 사용했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번역해서 부르기도 했다. 영화배우 겸 정치인 [[야마모토 타로]]가 [[일본공산당]] 소속 [[고이케 아키라]]와 함께 퇴진 시위 [[https://www.youtube.com/watch?v=TcVAYNRcEwc&t=617s|연설]]까지도 했다. 5월 3일에는 헌법기념일을 맞아 개헌을 반대 및 아베 퇴진을 주장하는 시민 6만 명이 시위를 열었다. 즉 당시 시위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는 뜻이고 아베의 지지율은 [[고이즈미 신지로]]에 밀렸다. 6월 10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2만 7천 명이 참가한 퇴진 시위가 있었다고 [[https://headlines.yahoo.co.jp/hl?a=20180610-00000045-mai-pol|마이니치 신문과 야후재팬에 보도되었다.]] [[야후재팬]] 주요 뉴스에 올라왔음이 특기할 만한데 [[일본 정부]]의 언론 통제 때문에 보도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기사가 삭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